"한국 생활이 모두 기적" 첫 드라마 도전 미국인 그렉 프리스터
"한국 생활이 모두 기적" 첫 드라마 도전 미국인 그렉 프리스터
  • 이상서
  • 승인 2020.06.19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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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TV 제주방송 코믹 드라마 '공무원 나대기' 주연 인터뷰

"한국 생활이 모두 기적" 첫 드라마 도전 미국인 그렉 프리스터

KCTV 제주방송 코믹 드라마 '공무원 나대기' 주연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흑인 부모를 둔 다문화 2세가 제주도 농촌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15일부터 KCTV 제주방송에서 방송되는 드라마 '공무원 나대기'는 이런 상상력에서 출발한 코믹극이다.

여러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해 가창력을 뽐내며 '그렉 형'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인 그렉 프리스터(38) 씨는 여기서 주인공 나대기 역을 맡았다.

프리스터 씨는 1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처음 연기자로 데뷔하는 작품이자, '안녕하수꽈'(안녕하세요)와 같은 제주 방언을 써야 해서 쉽진 않지만 원래 도전하는 일 자체를 즐긴다"고 말했다.

드라마 촬영 중인 그렉 프리스터
[스미스주식회사 제공]

영어 교사, 라디오 DJ, 유튜버, 가수 등 다양한 일을 거쳐온 그에게 이번에는 연기자에 도전하게 됐다.

그는 "2007년 한국에 입국한 뒤 문화적인 차이와 언어 장벽, 다른 피부색 등 수많은 난관을 거쳐온 나와 드라마 속 '나대기'는 닮은 점이 많다"라며 "맞닥뜨리는 일마다 최선을 다하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처음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공립학교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1년의 안식년을 갖고 낯선 나라인 한국을 찾았다.

한국을 다녀왔던 친한 미국인 친구가 "역동적인 면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너에게 어울릴 듯 하니 한번 가보라"며 강력히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프리스터 씨는 특유의 도전 정신으로 그 날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미국에서의 삶은 안온했지만 한편으로는 갈증이 느껴졌다. 안정된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오며 아버지의 희망대로 어릴 적 꿈인 가수도 잠시 내려놨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낸 제 인생은 하루하루가 놀라운 기적 같은 하루였어요. 경기도 파주영어마을에서 일하면서 어린 시절 간직했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게 됐거든요. 마음껏 노래 연습을 했고, 결혼식 축가도 부르고 다녔어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죠. 그러다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2012년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가수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른 그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시청자와 누리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JTBC '히든싱어', KBS '불후의 명곡', MBC '복면가왕' 등 여러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렸다. 정식 싱글 앨범도 꾸준히 발매했고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살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잇달아 일어난 것이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창법은 연기에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이미 노래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알고 있기에, 이런 장점이 연기에도 적용이 됐다고 본다"며 "물론 연기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움직임과 표정도 신경을 써야 하니 더 어렵긴 하다"고 말했다.

드라마 촬영 중인 그렉 프리스터
[스미스주식회사 제공]

한국 생활 10여년 동안 '나도 달라지고 이 나라도 달라졌다'고 그는 회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 저는 아무도 모르는 평범한 영어 교사였어요. 미국에 있을 때 방송에서 워낙 북한 뉴스를 많이 다뤄서 '저기 가도 괜찮을까' 걱정할 정도로 한국에 무지했고요. 지금은 밖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함께 사진 찍자', '사인 해달라'고 요청을 해주세요. 경계했던 제 마음도 열렸고요."

그러나 과거보다 인종 차별이나 편견도 줄었지만 여전히 TV를 틀면 고칠 점이 보인다고 강조한다.

그는 "'흑형'이 왜 유행하고 쓰이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이는 한국인과 흑인 사이에 상호 소통의 부족함을 드러낸 대표적인 예라고 본다"며 "인종 간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흑형'은 '흑인 형'을 줄인 말로, 흑인 남성을 지칭할 때 사용됐다.

이어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뮤직비디오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나오거나 흑인 비하 단어를 쓰는 것을 봤을 때 그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납득이 가게끔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며 "'흑형'이란 단어는 가급적 쓰지 말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시작으로 뜨겁게 번지고 있는 흑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기 보다는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서 신중하게 행동하려고요. 혹시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공감을 구하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모국에서 오랫동안 곪아왔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즉흥적으로, 감정적으로 폭발한 게 아닙니다."

이미 한국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꿈을 현실로 이뤘다는 그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게 남았다고 한다.

"내년까지 유튜브 개인 채널 구독자 100만명을 달성하고 싶고요. 앨범도 몇 개 더 발표할 거예요. 그리고 전국 투어 콘서트도 다닐 거고, 가능하면 전 세계 투어도 하려고요.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계속 연기자로서 도전도 해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꿈이 또 한번 현실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렉 프리스터
[스미스주식회사 제공]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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