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 18연패 탈출에 '골수팬' 루크 공주대 교수도 울었다
한화이글스 18연패 탈출에 '골수팬' 루크 공주대 교수도 울었다
  • 이상서
  • 승인 2020.06.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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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18연패 탈출에 '골수팬' 루크 공주대 교수도 울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오 마이 갓! 우리 팀 또 졌어. 20일 넘게 못 이기고 있잖아. 오늘도 지면 한국 야구 최다 연패 신기록이야."

1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홈팀의 승리를 바랐던 이가 있었다. 10년째 한화팬이자 열성적인 응원 모습으로 이미 야구팬 사이에서도 유명한 루크 호글랜드(36) 공주대 교양교육원 초빙교수다.

루크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팀 성적이 좋지 않다고 응원하는 구단을 바꾼다는 것은 배신이자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응원 중인 루크 호글랜드 [본인 제공]

 

"야구 봤어요?"

인터뷰를 시작하자 루크 씨가 물어본 말이다. 한화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18연패를 당했다. 13일 두산과의 홈경기마저 패하면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긴 역대 KBO리그 최다 연패 기록을 갈아치게 된다.

그러나 1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이날 경기가 우천 순연되자 루크 교수는 '하늘도 한화를 보고 우는구나' 싶었다고 한다.

다행히 다음날 진행된 서스펜디드 경기에서 극적인 끝내기 승리로 연패를 끊어냈다.

"야구를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야 하는데 한화 야구를 보면 스트레스를 더 받았어요. 오히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가 진행 중인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만약에 관중석에 있었다면 제 열받는 표정이 그대로 텔레비전에 잡혔을 테니까요."

실제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수염과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종종 중계 화면에 소개되면서 그는 한화팬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자 대전구장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1년에 50∼60차례나 대전 이글스파크를 찾았고, 경기가 없는 날엔 충남 서산에 있는 2군 시합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한화를 따라서 서울, 인천, 부산 등 전국 모든 야구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2012년에는 대전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전 야구 투어' 가이드를 맡으면서 대전과 한화 야구단을 소개했다.

그는 "한화는 운명의 팀"이라고 말했다.

2008년 미국 뉴멕시코 하이랜드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자로 처음 찾은 한국의 첫인상은 쾌활함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여기서 좀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자리를 찾았고 대전으로 내려가 영어 학원 강사로 근무했다. 이후 대전의 한 고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고, 2018년부터는 공주대 교양교육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기초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전과 한화는 여러모로 그와 공통점이 많았다.

"미국에서 고교와 대학교 모두 미식축구 팀에서 뛰었는데, 유니폼 색이 (한화와 똑같은) 주황색이었어요. 성적은 바닥이고 '언더독'(이길 가능성이 적은 팀이나 선수)이었던 것도 동병상련이었죠. 그러고보니 제 고향팀인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팀컬러가 주황색이네요."

 

 

고향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에서 루크 호글랜드 [본인 제공]

 

 

처음 본 한화 야구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왜 저런 실책을 하지?' '왜 작전이 없지?' '왜 우리는 어이없는 플레이가 많은 거지?'

차라리 강팀을 응원했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이 든 적도 있었다.

그는 "내 인생 3분의 1을 대전과 충남에서 보냈으니 여기가 이제 고향이나 마찬가지"라며 "성적이 안 좋다고 연고 구단을 외면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꼴찌를 도맡아 하는 구단이지만 한화만의 '마약같은 매력'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래 어렵고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면 더 끈끈하고 정도 깊어지잖아요. 다른 구단 팬은 알 수 없는 한화팬 만의 차별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 때문에 지고 있더라도 매일 '행복합니다'라고 응원하는 거겠죠?"

길었던 연패가 끝나자 그는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다. 눈시울이 시큰해졌고,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그는 "2013년 개막하자마자 13연패를 이어갔을 때도 난 계속 응원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사실 올해 가을 야구는 힘들어 보이긴 해요. 그냥 선수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시즌 마무리하고 내년 준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아! 연패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제발!"

 

한화를 응원하는 루크 호글랜드 [본인 제공]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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