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史 알고 싶은 佛 입양한인 "친부모 원망 없어요"
가족史 알고 싶은 佛 입양한인 "친부모 원망 없어요"
  • 왕길환
  • 승인 2020.06.1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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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출신, 1974년 12월 2일 서울 종로3가서 발견 킴 르 퀘어 씨

가족史 알고 싶은 佛 입양한인 "친부모 원망 없어요"

광주광역시 출신, 1974년 12월 2일 서울 종로3가서 발견 킴 르 퀘어 씨

 

 

프랑스 입양한인 김은주씨 어린시절 모습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 제공]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제 뿌리를 알고, 이를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프랑스 입양 한인 킴 르 퀘어(한국명 김은주·51∼52세) 씨가 친부모를 찾는 이유다.

그는 최근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에 보낸 사연에서 "친가족을 원망하거나 미워해본 적이 없다. 그분들은 양육할 방법이 달리 없었기에 입양을 선택했다고 믿어왔다"며 "친가족을 다시 만난다 해도 어떤 의무나 책임을 가져 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물질적인 도움도 필요 없고, 다만 자신의 이야기, 친가족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고 했다.

퀘어 씨의 딸은 9월 말까지 한국에서 공부할 예정이다. 딸이 어머니의 나라를 선택해 유학을 떠난 것에 감사하면서도 뿌리를 더 알려주지 못해 그는 늘 마음이 아플 뿐이다.

친부모와 가족을 절대로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얼마 전부터 다시 연고를 찾아 나섰다. 시간을 더 흘려보내면 친부모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퀘어 씨는 1974년 12월 2일, 서울 할머니 집에 있는 자신을 찾아온 한 삼촌(추정)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관에 갔었다고 한다. 잠시 화장실에 간다던 그 삼촌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한 경찰서에 인계됐다.

당시 7살 정도 됐던 그는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자주색 스웨터에 짙은 색 바지를 입었고, 옷 꾸러미를 손에 들었어요. 저는 삼촌을 찾으러 화장실로 달려가 일일이 문을 열어봤었죠. 그분이 극장 입구에서 사탕 한 봉지를 사줬기에 당시 판매원이 삼촌을 봤을까 싶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고, 저는 그렇게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현재 김은주 씨 모습(위)과 딸, 아들과 함께한 장면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 제공]

 

대한적십자사 미아 일시보호소에 맡겨졌다가 1974년 12월 18일 서울의 '기독교 언더우드 절제소녀관'(현 에델마을)에 입소해 생활하던 그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1976년 1월 21일 프랑스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1997년 처음 모국을 찾은 그는 이름이 '이은주'에서 '김은주'로 바뀐 사실을 알았다. 대한적십자사는 '이 씨'로, 홀트아동복지회는 '김 씨'로 각각 기록했다. 태어난 날도 '1967년 5월 3일'로 나오지만, 경찰에 인계될 때 나이가 7세였기에 '1968년'이나 '1969년'일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광주광역시에서 그는 자랐다고 한다. 고모와 삼촌 두 분, 몇 살 더 많은 사촌 언니 1명과 한집에 살았다고 기억했다.

"집은 부엌과 생활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고요. 안 마당에 대문이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재래식 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고, 빨래를 널거나 생선을 말리던 테라스가 있었죠. 집은 두 길이 만나는 모퉁이에 있고, 집 앞에 난 좁은 도로에는 상점들이 있었는데, 맞은편에는 미용실(이발소)이 보였습니다."

집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철로가 놓여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러 갔던 기억도 있다.

퀘어 씨는 대학 졸업 후 한 냉동식품 전문회사에서 판매 담당·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다 1995년 그만두고 프랑스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1남 1녀를 둔 그는 여러 차례 자녀와 함께 모국을 찾아 한국문화를 체험했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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