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누' 지혜원 감독 "목포의 눈물 한 맺히게 부른 네팔인"
'안녕, 미누' 지혜원 감독 "목포의 눈물 한 맺히게 부른 네팔인"
  • 이상서
  • 승인 2020.06.1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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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누' 지혜원 감독 "목포의 눈물 한 맺히게 부른 네팔인"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외국인 노동자에게 현지 전통 음식 주고 전통 옷 입히면 그게 다문화인가요? 축제 열어주면 그게 이주민을 위한 정책인가요?" - 영화 '안녕, 미누' 중

2009년 10월 불법 체류자로 적발돼 강제 추방당하며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네팔인 故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 씨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주 노동자로, 다국적 밴드인 '스탑 크랙 다운'의 보컬로, 인권 운동가 등으로 활동하며 18년을 한국에서 보낸 그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미누'가 최근 개봉하면서부터다.

지혜원 영화 감독
[영화홍보사 필앤플랜 제공]

지혜원(52) 영화 감독은 1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지 1년여 만에 미누가 세상을 떠났다"며 "그의 삶을 담은 영화라는 기록물이 남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2017년 네팔에서 미누를 처음 봤을 때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이질감 없는 보통 한국인 같았어요. 생김새도, 말투까지 전부요. 한국 사람보다 더 '목포의 눈물'을 한스럽게 부르는 네팔인이었어요."

당시 미누 씨는 8년째 한국 땅을 밟지 못했지만 네팔에서 봉사 활동과 한국어 강사, 한국으로 떠나는 자국 노동자를 안내하는 일을 하며 한국과 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는 믿음도 놓지 않았다.

지 감독은 "왜 그토록 한국을 그리워할까 궁금했다"며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한국에 애정이 깊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스무살에 처음 한국으로 와 20∼30대 청춘을 온전히 이곳에서 보냈고 열성을 담아 추진한 일도 많았다"며 "그 과정에서 좋은 인연과 추억 등이 한국을 특별한 나라로 기억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음악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컸고, 마침 이주 노동자로 구성된 음악 밴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작에 들어갔지만 미누 씨와 그를 둘러싼 한국의 추억 등을 알게 되며 영화는 한 이주 노동자의 일대기를 그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2009년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미누 씨 강제추방 규탄 기자회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2년 2월 관광 비자로 한국에 처음 온 미누 씨는 경기도 의정부의 식당과 가스 밸브 공장, 김치공장, 봉제 공장을 옮겨 다니며 1세대 이주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여러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해 상을 휩쓸었고, 이주 노동자로 구성된 밴드 보컬과 이주노동자 방송(MWTV) 공동 대표를 맡는 등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계기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력히 단속하게 되자 미누 씨의 한국살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법무부는 그에게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고 17년이나 장기 불법 체류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추방 조치를 했다.

고용허가제 운영을 놓고도 찬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 감독은 이런 부분과 관련, "난 이주민 운동가가 아닌 영화 감독이기에 정치적인 이슈에서 최대한 벗어나 한 인물의 사연에 최대한 집중하고자 했다"면서도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맹목적으로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이들이 왜 한국에 왔고 계속해서 머물기를 바라는지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지 감독은 영화 내내 무엇이 미누 씨와 이주민 노동자가 얼마나 한국을 그리워하는지 관객에게 비춰준다. 강제 추방 당한 이후 네팔에 머물던 미누 씨가 그를 찾아온 밴드 멤버들과 함께 공연을 마친 뒤 "이제 여한이 없다"고 울먹이는 장면이나, "엄마가 '집을 나가라'고 해도 다시 엄마 품이 그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주노동자 미누 씨의 공연 모습
[영화 '안녕, 미누' 스틸컷]

영화는 2018년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당시 미누 씨는 영화제 참석 목적으로 특별 입국을 허가 받아 사흘간 한국을 찾은 뒤 한 달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일부러 덤덤하게 연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영화 사이사이에 예상치 못한 유머 코드를 넣은 것도, 슬픔을 차분하게 그린 것도 그게 바로 미누 씨의 삶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너그럽게 수용하고 포용하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최근 이방인을 향한 경계심이 커진 것 같다"며 "맹목적인 차별과 배척하는 문화가 사라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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