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걸쳐 '한국-그리스 사랑' 잇는 한인 가족 이야기
3대 걸쳐 '한국-그리스 사랑' 잇는 한인 가족 이야기
  • 강성철
  • 승인 2020.06.0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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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그리스 정착 장려상 씨, 양국 교류 앞장…아들·손자는 모국서 사업

3대 걸쳐 '한국-그리스 사랑' 잇는 한인 가족 이야기

1955년 그리스 정착 장려상 씨, 양국 교류 앞장…아들·손자는 모국서 사업

그리스 최초 한인 장려상 씨 아들 테리장·파블로스 장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6·25 당시 그리스군으로 참전해 그리스로 이주한 최초 한인 장려상 씨의 아들인 테리장(가운데)·파블로스 장(왼쪽)과 손자인 알렉산드로스 장은 한국에서 헬레닉와인을 운영하면서 한국과 그리스 간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2020.6.3 wakaru@yna.co.kr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3대에 걸쳐 '한국과 그리스의 사랑'을 이어가는 한인 가족이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 그리스군 통역병으로 참전한 장려상(현지 이름 알렉산드로스·84) 씨와 그의 두 아들 테리(49)와 파블로스(42), 손자 알렉산드로스(26) 장 씨의 이야기다.

유럽한인총연합회가 최근 발간한 '유럽 한인 100년의 발자취'에 따르면, 장려상 씨는 1950년 12월 북한 평양에서 월남했고, 참전국 그리스의 군무원으로 입대해 이듬해 부대장 통역병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리스군은 1만581명을 한국전쟁에 파병했고 이 가운데 186명이 전사했다.

1955년 그리스군이 철수할 때 현지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발탁돼 공식 이주했고, 아테네대학에서 신학과 역사를 전공한 뒤 정착해 '한인 1호'가 됐다.

그리스군 연대장의 양자가 된 그는 가톨릭 사제가 될 생각도 했지만 가정을 꾸리고 싶어 포기하고 같은 대학에 다니던 그리스 여성 안드레아니를 만나 결혼했다.

장 씨는 3일 연합뉴스와의 국제통화에서 "대학 졸업 후 무역업에 뛰어든 이래로 고국의 위상을 높이려고 한국산만을 수입해 그리스에 알렸다"고 기억했다.

그는 아테네 상공회의소 한-그리스 분과위원장, 3∼4대 한인회장을 맡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성화봉송 주자로 뛰기도 했다. 현재는 그리스 참전용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위 선양과 무역 증진, 한인 복지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석류장과 표창장 등을 수여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어디를 가던 그리스인이자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라"고 당부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를 듣고 자란 둘째 아들 테리와 셋째 파블로스 씨는 2014년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예 모국에 정착했다. 큰아들은 그리스에 남아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테리 장은 2004년 그리스 관광부 특별고문 자격으로 한국사무소 설립을 모색하기 위해 파견근무를 오면서 반년 이상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재외동포 비자(F4)로 체류 중으로 65세 이상 가능한 복수 국적 취득 연령이 완화되면 한국 국적도 취득할 계획이다.

3대 한국사랑 장려상 씨 가족
1995년 그리스에 정착한 장려상(뒷줄 좌측에서 세 번째) 씨와 부인 안드레아니(뒷줄 좌측 두분째), 세 아들과 손자들. [장려상 씨 제공]

두 아들은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그리스 농산물·식자재를 수입해 유통하는 '헬레닉와인'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평생 한국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면서 '메이드인 코리아'를 알리며 양국 교류에 나섰던 아버지의 삶을 본받아 한국에서 그리스를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들 회사는 와인 종주국인 그리스 와인과 올리브, 치즈, 그리스식 요구르트, 식초 등을 판매한다.

두 아들은 그리스 관광부의 한국사무소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주한그리스대사관의 문화 행사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테리 씨는 "그리스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킨 한국이 오늘날 경제 대국이자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을 늘 자랑스러워한다"며 "그리스에 한국이 많이 알려진 것에 비해 한국인이 그리스 문화를 잘 모르는 게 안타까웠고 이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음식이라 생각해 '헬레닉와인'을 차렸다"고 소개했다.

파브로스 씨는 "노인을 공경하고 가족 중심의 생활 습관이 한국과 비슷하고 특히 요구르트와 치즈처럼 발효음식인 김치와 된장이 대표 음식인 것도 공통점"이라며 "한국은 고향처럼 편하다"고 좋아했다.

손자 알렉산드로스는 할아버지의 나라를 배우겠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한국으로 건너와 '헬레닉와인' 매니저로 근무한다.

알렉산드로스 씨는 "할아버지는 평소 한국과 그리스가 서로 우호·협력하면서 사이좋게 잘 살기를 희망하셨다"며 "그 바람이 이뤄지는데 작은 씨앗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스 국적자인 장 씨는 올가을에 국적을 되찾으려고 방한할 계획이다. 이날 전화 통화에서 그는 "그리스 국적으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위해 국적 회복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그리스 참전용사를 매년 잊지 않고 초청해주는 것에 고마워하면서도 후손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참전 용사 가족 초청은 매회 나라별로 1∼2명에 한정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고 싶어하는 후손은 훨씬 많습니다.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켜낸 나라에 호기심도 있지만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뤄낸 것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후손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도록 초청 캠프뿐만 아니라 장학사업도 확대해줬으면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그리스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장려상 씨
2006년 9월 5일 그리스를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주최한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장려상 씨(우측 끝) [연합뉴스 자료사진]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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