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집]④ "숙소 스트레스에요…한국에 오지 마세요"
[이주노동자의 집]④ "숙소 스트레스에요…한국에 오지 마세요"
  • 홍덕화
  • 승인 2020.05.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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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근로자' 취업연장 포기하고 언론 앞에 선 네팔 이주노동자 니마씨

[이주노동자의 집]④ "숙소 스트레스에요…한국에 오지 마세요"

'성실 근로자' 취업연장 포기하고 언론 앞에 선 네팔 이주노동자 니마씨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언론에) 신고(제보)한 걸 사장님이 아시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못 견디겠어요. 일하러는 한국에 오지 마세요"

설 연휴 기간인 지난 1월 24일 경기도 이천의 한 공장 부지.

30대 네팔 이주노동자 니마(가명)씨는 주위를 살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5개업체가 들어선 6천 500여 평의 공장 부지에 기다란 단층 건물이 꼬불꼬불 부지의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곳이다. 그는 취재진을 숙소로 안내하면서도 노파심에서인지 "밖에선 촬영하면 안 돼요. CCTV가 있어서 사장님이 알 수 있어요"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그는 B 플라스틱 제조 공장에서 4년 넘게 일했다.

최대 근무 기간(4년 10개월)을 채우면 귀국해야 하지만, '성실 근로자 제도'를 통해 국내에서 더 일하기를 원하는 근로자이다. 소규모 제조업, 농축산·어업에서 사업장 변경 없이 근무한 외국인노동자가 재입국해 4년 10개월을 더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이 제도의 혜택을 보려면 사업주의 요청이 필수다.

니마 씨는 한국에서 더 일하고 싶지만, 언론에 인권유린 실태를 제보해 사실상 이 제도의 혜택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가 고발한 건 다름 아닌 인권유린에 가까운 열악한 주거 실태다. 작업장의 스트레스가 기숙사에서도 이어지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 니마(가명)씨
(서울=연합뉴스) 사업장에서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무릅쓰고 단비뉴스에 자신이 지내고 있는 사업장의 열악한 주거 실태 등을 제보했다.[사진 =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김지연]

그는 인터뷰 내내 '스트레스'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공장 건물에 있는 숙소를 살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이중으로 세워진 현관문은 주저앉은 경첩 탓에 좌우 문짝이 엇나가 여닫을 때마다 '깡'하는 금속음을 냈다. 건물로 들어서자 왼쪽에는 작업장이, 오른쪽으로는 동료들이 묶고 있는 8개의 쪽방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니마 씨에 따르면 쪽방이 있는 곳은 2년 전까지만 해도 공장 기계 등이 놓여 있었다. 가건물 형태의 숙소를 만들다 보니 얇은 패널로 벽을 세운 탓에 옆 방의 소리도 다 들린다. 누가 집에 전화라도 하면 시끄러워서 잠도 잘 수 없는 데다 (창문이 없어) 바람도 안 통하고 숨이 막힌다고 하소연했다.

컴컴한 복도를 따라 늘어선 2평 남짓한 쪽방 하나에는 2~3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살고 있다. 각각의 방에는 창문이나 환기구가 없다. 문을 닫으면 바람도 통하지 않는다.

쪽방에서 나와 취재진을 맞이한 락파(20대·네팔·가명)씨는 "(쪽방은) 2명이 사는데도 비좁다"며 "에어컨도 1~2시간만 켤 수 있고 바람도 안 통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10여명이 지내는 8개 쪽방 복도 끝자락에 놓인 에어컨은 고작 한 대뿐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숙소비로 1인당 14만원을 지불한다. 3명이 쪽잠을 자는 쪽방의 월세는 42만원에 달한다.

락파 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집이 편하고 일하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작 와보니 좋지 않아"라고 말했다.

니마 씨가 공작 작업 후 기거하는 컨테이너 숙소.
공장 건물(사진 왼쪽)과 붙어 있는 컨테이너 숙소. 숙소의 외벽은 붉게 녹이 슬었고, 바닥엔 수평을 잡기 위해 각목과 벽돌을 받쳐두었다.[사진 = 단비뉴스팀 특별취재팀 이정헌]

쪽방 복도 끝엔 공용 주방과 화장실이 있다. 주방 구석에는 '전기 위험' 표식이 붙은 공장 발전기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니마 씨는 "방 안에도 전기 시설이 이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 옆에 가스레인지가 2개 설치돼 있다. 벽을 따라 어설프게 연결된 가스 호스들은 금방이라도 안전사고를 낼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곳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스트레스를 더하는 또 다른 불편은 화장실이다. 10여명이 소변기 2개, 좌변기 2개가 설치된 화장실 하나를 같이 써야 한다.

쪽방 복도를 나와 열 걸음, 철문을 열면 약 300평 규모의 실내 작업장이 있다.

각종 기계와 플라스틱 찌꺼기가 담긴 포대와 자재로 어지러운 작업장의 구석에는 '위험 특별고압 22,900V'라는 경고 문구도 있었다. 그런 일터와 쉼터의 경계는 잠기지 않는 '철문' 하나였다.

공장을 가로질러 반대편에 이르자, 거대한 슬라이딩 도어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밀어내자 곳곳에 붉게 녹이 슨 컨테이너가 나타난다. 니마 씨의 집이다. "지내기에 춥겠다"는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요. 도로의 차 소리도 너무 시끄러워요. 공장이 늦게는 밤 9시 넘어서까지 돌아가는데, 작업 소리도 다 들려요. 잠도 잘 못 자요.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한데, 사장님이 사주질 않아서 제 돈으로 선풍기 하나 샀어요."

컨테이너에 들어서자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발을 뗄 때마다 수납장의 포도주, 비타민 음료 등 유리병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벽지 곳곳에는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보였고, 장판 일부는 보일러의 높은 온도 때문에 까맣게 탔다.

문을 굳게 닫아도 바깥 도로를 오가는 차량 소음과 인근 대형마트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선전 광고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는 컨테이너 숙소비로 매달 13만9천600원을 낸다. 급여의 7%에 달한다. 사업주는 매달 10일 지급하는 급여에서 숙소비를 공제한다.

이런 형편없는 기숙사를 제공한 대가로 사업주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한국의 규정을 그는 좀체 이해할 수 없다.

"2017년에 사장님이 법이 바뀌었다며 숙소비를 공제하기 시작했어요. 월급이 올라가고 있으니 기숙사비도 뺀다는 겁니다. 사장이 말로만 설명했고 저희는 종이에 서명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니마 씨 얘기를 들어보니 '서명'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질 법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2월 10일 시행한「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에 따르면 숙식을 제공하고 서면 동의를 받은 사업주는 이주노동자 임금의 8∼20%를 숙소비로 받을 수 있다.

니마 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숙박비 자체보다도 열악한 주거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52) 위원장도 "(강제력이 없는) 지침이다 보니 일정 비율 이상으로 숙소비를 받을 수도 있다"며 "열악한 주거시설에도 사업주들이 버젓이 돈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니마 씨의 2015년 표준근로계약서.


2017년 노동부에서 숙식비 공제 지침이 나온 뒤 숙식비를 공제하기 시작한 사업주는 구두로 "법이 바뀌었다"고 설명했을 뿐 서면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 단비뉴스팀 특별취재팀 김지연]

"맨날 스트레스를 받으니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은데, 4년 10개월 더 일할 수 있는 성실 근로자가 되려면 이 공장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사장님이 사업장 변경을 안 해주기 때문에 결국은 여기 있어야 해요."

니마 씨는 그간 쌓인 울분을 토해내며 후련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선 미묘한 불안감도 느껴졌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일터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사업장에 머물러야 했고 주거 문제는 속으로 삭여야 하는 울분이 되었다. 용기를 내 언론에 제보하기로 결심했지만, 행여나 이 사실을 사업주가 알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번 "가명으로 해주세요"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으로 이주 노동을 준비하는 자국민에게 그저 말리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네팔에서 일하세요. 네팔에서 고생하고 받는 혜택을 한국에선 임금, 기숙사 같은 문제 때문에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는) 여행하러 가세요. 하지만 일하기 위해서는 안 가도 됩니다. 네팔에서도 고생하면 그만큼 벌 수 있습니다."

계약이 끝나 출국하는 이주노동자의 빈자리는 새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채운다. 그동안 같은 자리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집'은 좀처럼 바뀌지도 개선되지도 않는다.

1월 30일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우다야 라이 위원장을 다시 만났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로 주거 문제에 관한 사업주의 무책임한 의식을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한국보다 경제 상황이 열악한 나라에서 옵니다. 그래서인지 사업주들은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한국 사람들도 이런 데 살고 있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인간이 사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은 주거 문제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놔두는 겁니다."

니마 씨는 2015년 5월 입국 당시, 사장에게서 숙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얘기라도 들은 게 있을 것 같아 물어봤다. 당시의 가뭇한 기억을 더듬던 그는 처음 만난 사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빨리) 일해!".

duck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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