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몽골 이라 씨 "코로나 탓 한-몽 수교 30주년 행사 연기 아쉬워"
[인터뷰] 몽골 이라 씨 "코로나 탓 한-몽 수교 30주년 행사 연기 아쉬워"
  • 이희용
  • 승인 2020.03.1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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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혐오 늘어날까 걱정…30년간 한국을 많이 배워"

[인터뷰] 몽골 이라 씨 "코로나 탓 한-몽 수교 30주년 행사 연기 아쉬워"

"외국인 혐오 늘어날까 걱정…30년간 한국을 많이 배워"

 

 

(성남=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이라 '다모 의료&문화관광 협동조합' 대표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26일은 한국과 몽골이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양국 정부는 올해를 '한-몽 우정의 해'로 정하고 민간단체와 함께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모두 미뤘다.

확진자가 8천 명을 넘어선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확진자가 5명에 불과한 몽골에서도 축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주민의 이동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념행사가 언제 열릴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아요. 수교 30주년 기념일을 아무런 행사 없이 넘길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재한 몽골인들은 7월 11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펼치는 몽골 전통축제 나담의 행사 규모를 올해 크게 키울 계획입니다. 몽골 전통문화도 소개하고 고마웠던 분들께 감사 표시도 할 생각이죠. 그전에는 사태가 진정돼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몽 수교 30주년을 맞는 재한 몽골인들의 소감을 듣기 위해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다모 의료&문화관광 협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하자 이라(43) 대표는 서운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 뒤 감사 인사와 다짐을 털어놓았다.

"17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많이 배웠고 많이 얻었습니다. 몽골도 지난 30년간 한국과 교류하며 여러 면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죠. 앞으로 더욱 관계가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민간외교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죠"

 

이라 대표(가운데)가 2018년 사무실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켜놓고 다모 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모 의료&문화관광 협동조합 제공]

 

이 대표는 몽골 출신 이주민의 얼굴이자 결혼이주여성의 간판이나 마찬가지다. 2014년 재한몽골인협회를 창설해 2017년까지 회장을 지낸 데 이어 2017년 재한몽골인단체총연합회를 만들어 지난해 말까지 회장을 맡았다. 2010년 주한몽골여성회 출범을 주도했는가 하면 재외몽골인연합회 이사로도 재임 중이다.

2012년에는 다문화여성연합을 결성했고 여기서 만난 몽골·태국·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필리핀 출신 6명이 의기투합해 2016년 다모교육문화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다모'는 '다문화가정 엄마'란 뜻이기도 하고 '다 모였다'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다문화이해교육과 세계시민교육 강사 파견, 공연단 운영 등이 주요 업무였다가 지난해 의료관광으로 업종을 바꿨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요즘 협동조합은 일감이 없어 개점 휴업 상태지만 이 대표는 한가할 틈이 없다. 1월 말에서 2월 초까지는 '걷기 뛰기 좋아하는 몽골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과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서 '#10000 MASK 운동'을 벌여 모금한 238만 원으로 마스크 1만40개를 사서 몽골에 보냈다. 2월 말부터는 코로나19로 불안해하는 재한 몽골인들에게 무료 통역을 해주고 있고, 코로나19와 관련된 한국의 주요 뉴스를 몽골어로 번역해 모국에 알리고 있다.

"코로나19가 삽시간에 각국에 퍼진 것은 세계화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각국이 문을 걸어 잠그는 반(反)세계화 현상을 낳고 있죠.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을 겨냥한 '묻지마 폭행'도 일어나고, 한국에서도 중국인 혐오증이 고개를 듭니다.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외국인을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의 의료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우리 협동조합의 의료관광 사업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성남=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이라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협동조합이 개점 휴업 상태라며 안타까워했다. 뒤편에 보이는 3월 일정표가 대부분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

 

이라 대표는 몽골의 셀렝게에서 태어났다가 5살 때 수도 울란바토르로 이사했다. 몽골 이름은 네르귀 게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귀국해 운수회사에서 일하다가 여행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몽골에서 사업을 해보려고 들렀는데 이 대표와 결혼하자 지인들에게 "사업하러 몽골에 간 게 아니라 연애하러 간 것"이라는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2003년 10월 몽골에서 결혼하고 한국으로 이주했다. 2008년에는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서강대 한국어교육센터를 거쳐 강남대 사회복지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동국대 국제다문화학과 박사과정도 마치고 논문만 남겨놓고 있다.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입국했어요. 그때는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곳도 없고, 지금처럼 SNS도 보급되지 않아 정말 답답했죠. 주변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요즘 이주해오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항에 들어올 때부터 각종 안내판에 외국어가 병기돼 있는가 하면 24시간 각국 언어로 통역을 해주고 주말에 운영하는 이주민 지원센터도 곳곳에 있으니까요"

 

2019년 6월 29일 경기도 성남시청공원에서 열린 '제1회 줌인 문화①-빛나는 몽골 밤하늘 여행기' 토크쇼 순서에서 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이라 대표(맨 왼쪽)가 몽골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라 씨 제공]

 

이 대표는 2010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경기도의원에 당선돼 '다문화 정치인 1호'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주민 자조모임 사업을 확대하고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무엇보다 공무원이나 일반 시민의 다문화 인식을 개선하는 데 한몫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나중에 돌이켜보니 자조모임도 필요하지만 이주민들이 주민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지역사회에 동화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도의원 시절에는 '악플'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게 무슨 도의원이냐"라는 비난이나 "한국인 중에서도 어려운 이웃이 많은데 왜 외국인까지 도와줘야 하느냐"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4월 15일로 예정된 21대 총선에는 19대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씨가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겨 재도전한다.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원옥금 주한베트남교민회장은 최근 비례대표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

이 대표는 "학자나 전문가들의 시선과 당사자들의 관점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 만큼 이주민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해 할 역할이 많다"면서 "정치인들은 이주민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기보다 이주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성남=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이라 대표는 한국에 오는 몽골 출신 이주민에게 "게으름은 잠시 접고 한국의 빠른 속도에 적응하라"고 충고했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몽골인은 2020년 1월 말 현재 4만9천765명으로 8번째로 많고 유학생은 8천865명으로 4위에 해당한다. 인구(328만 명) 비례로 따지면 각각 1.52%와 0.27%로 모두 압도적 1위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좋아해요. 한국 노래나 드라마, 한국 상품들도 인기가 높죠. 특히 2차대전 후 독립해 고속 성장을 이룬 나라여서 배울 게 많다고 여깁니다. 그전에는 나를 비롯한 몽골 사람 대부분이 한국에 관해 전혀 몰랐어요. 고려가 몽골군의 침공을 받은 뒤 원나라의 사위 나라가 됐다는 사실도 남편한테 들어서 처음 알았죠. 학교에서는 그런 역사를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한국에 오는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유학생·결혼이주여성 등에게 도움말을 해 달라고 하자 "한국은 매우 바쁘게 살아가는 나라여서 몽골 시절의 생활습관을 버려야 한다. 게으름을 잠시 접고 빠른 속도에 적응하라. 배울 수 있는 대로 다 배워라"라고 충고했다.

 

이라 대표(왼쪽 세 번째)가 2019년 11월 수원의 경기상상캠퍼스에서 다모 회원들과 함께 의료관광사업 홍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다모 의료&문화관광 협동조합 제공]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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