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한인간호협회장 "조국은 나의 부모이자 영원한 안식처"
재독한인간호협회장 "조국은 나의 부모이자 영원한 안식처"
  • 류일형
  • 승인 2019.10.3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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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찾는 무연고 동포들에게 숙소 저렴하게 제공해줬으면…"

재독한인간호협회장 "조국은 나의 부모이자 영원한 안식처"

"고국 찾는 무연고 동포들에게 숙소 저렴하게 제공해줬으면…"

(서울=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조국은 나의 부모이자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파독 간호사 15명을 이끌고 모국을 방문한 박소향(65) 재독한인간호협회장은 파독 간호사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지만 '국위 선양'이 입에 붙었다.

박소향 재독한인간호협회 회장
(서울=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재독한인간호협회 박소향(65) 회장은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외한인 간호사들이 고국에서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9.10.30 ryu@yna.co.kr

제3회 재외한인 간호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찾은 박 회장은 31일 빡빡한 일정을 쪼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났다.

그는 경북대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1978년 9월 꽃다운 나이에 대한민국 간호사 가운데 처음으로 북아프리카 리비아 근무를 자원했다.

"간호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할 수 있는 직업이고, 국위도 선양하며 돈도 벌고 넓은 세상을 경험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1년 근무 계약으로 나갔던 박 회장은 리비아의 심장병원에서 일하던 중 친구 병문안을 왔던 파란 눈의 독일인 기술자 롤프 슈베르트페거 씨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마침 친구가 퇴원하는 날 트리폴리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고, 슈베르트페거 씨와 친구는 박람회 한국관 홍보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기로 돼 있던 박 회장 등 한국인 출신 간호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때 내가 입었던 화려한 한복과 비녀에 반했다고 남편이 나중에 털어놓았어요"

리비아 근무 1년 만에 남자친구를 따라 독일로 간 박 회장은 독일에 계속 있을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을 못 하고 1980년 일시 귀국했다.

당시 슈베르트페거 씨는 박 회장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와 김포공항에서 경북 포항까지 택시를 타고 내려오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에 감동한 박 회장은 한달 뒤 그와 독일인 신부가 있는 포항 죽도 성당에서 결혼했다.

이후 독일에 정착한 박 회장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간호사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나 남편은 4년 전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박소향 재독한인간호협회 회장
(서울=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사)재독한인간호협회 박소향(65) 회장이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평소 들고 다니며 독일사람들에게 선물도 한다는 전통 기념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9.10.30 ryu@yna.co.kr

박 회장은 중국·일본을 알면서 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병원 동료 등 독일사람들에게 고국을 알리기 위해 한국 지도를 크게 복사해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설명해주는 열성을 보였다. 한국에 들어오면 매듭 공예 등 전통 기념품을 구입해 선물하기도 했다.

남편도 생전에 한국에서 전통부채와 인삼 등을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등 한국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말했다. 아들 둘도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하는데, 둘째 아들(30)은 지난 달 서울서 열린 전국체전에 재독 동포팀 축구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2년 임기의 회장직을 연말에 내려놓는 박 회장은 재외한인 간호사들이 고국에서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국위 선양과 국가 경제를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한 파독 간호사들이 이제 늙어 그리운 고국을 찾아와도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편하게 묵을 곳이 없다"면서 "무연고 동포들을 위한 숙소 마련을 오래전부터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ryu62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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